학교에서 4년, 총 39년 6개월을 근무한 교장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셨다. 교직 인생 10년이 넘었지만, 교장이 정년퇴임을 하는 것은 처음 본다. 그만큼 보기 힘든 일이다.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소수의 측근을 달달 볶으면서 그 외 주변 사람들한테는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는 방법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장선생님의 퇴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성대한 퇴임식을 치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교장선생님 퇴임식의 식순과 진행한 이벤트에 대해 정리해봤다.
교장선생님 퇴임식 식순
우리학교에서 진행한 교장선생님 퇴임식 식순은 다음과 같았다.
- 개식사
- 국민의례
- 내빈(가족) 소개
- 약력 소개
- 퇴임사
- 친목회 발전기금 전달
- 시상식
- 가족들의 축사
- 영상시청
- 꽃다발 및 축하금 증정
- 정부포상 전수 및 송공패 증정
- 축시
- 축하공연
- 케이크 커팅
- 폐회사
위와 같은 식순으로 진행된 정년퇴임식은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교장선생님 퇴임식 모습과 장면
교장선생님 정년퇴임식의 사회자는 교무부장님이셨다. 교사 외에 행정실에서 일하는 교육행정직, 여러 교육공무직, 교장선생님의 가족(남편과 자녀, 손자)과 지인, 학부모 회장까지 참석했다.
약력 소개는 교감선생님께서 하셨다. 처음으로 발령 받은 연도와 거쳐온 학교, 장학사와 장학관 경력, 교감과 교장을 어느 학교에서 했는지 말씀하셨다. 교감선생님이 위트가 있으셔서 재미 없는 내용임에도 재밌게 들을 수 있었다.
퇴임사는 교장선생님께서 하셨다. 여러모로 부족한 자신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의지와 열정, '조금 더' 정신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하셨다. 조금 더 개선할 내용을 찾고 고민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는 너무 달리지 말고, 적절히 쉬면서, 즐기면서 교직 생활을 하라고 조언하셨고 마지막으로 꼭 정년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친목회에 발전 기금으로 100만원을 전달하셨다. 친목회에서 교장선생님 가족분들과 지인분들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답례였다.
시상식은 교장선생님의 아이디어였다. 교무행정실무사와 교감선생님에게 '자랑스러운 ㅇㅇ교직원상'과 '최고의 파트너상'을 시상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퇴임을 축하하러 온 어린 손자들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시면서 배움에 힘쓸 것을 당부하셨다. 유머와 위트가 뛰어난 교장선생님 다운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교장선생님 자녀분들이 교장선생님께 공로패를 전달했다. 울먹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짠해졌다. 교잔선생님도 교장 이전에 한 명의 엄마로서 같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상시청은 우리학교에서 유튜브를 운영 중이신 한 부장님께서 제작해주셨다. 말 그대로 그분을 갈아서 만든 영상이었다. 심지어 학생용과 교직원용 두 가지 버전을 만드셨다. 대단한 능력자이시다. 영상 내용은 교장선생님이 4년간 학교에서 했던 것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기, 교직원들의 인사 영상 보여주기, 교직원들의 메시지 전달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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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퇴임 영상 중 일부 - 본인 환갑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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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퇴임 영상 중 일부 |
다음으로는 친목회와 교장선생님 가족, 지인들이 교장선생님께 축하의 의미로 꽃다발과 선물을 드리는 시간이 있었다. 꽃다발만 족히 10송이는 받으신 것 같았다.
교장으로 정년 퇴직을 하면 대통령에게 홍조근정훈장을 받을 수 있다(정확히 이야기하면 33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대한민국 옥쇄 직인이 찍힌 손으로 쓴 상장과 목에 거는 훈장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친목회에서 제작한 송공패도 같이 전달됐다.
축시는 우리학교 수석교사 선생님께서 쓰셨다. 시를 읽으면서 배경음악은 피아노를 잘 치시는 교무부장님께서 라이브로 연주하셨다.
축하공연은 학교에서 팬플루트를 잘 부시는 선생님께서, 교무부장님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The Rose 노래를 연주하셨다. 학교에서 아침마다 연습하시더니 실력이 출중하셨다.
케이크 커팅은 교장선생님, 사부님, 교감선생님, 친목회장님이 같이 하셨다. 2단 케이크는 아니었고 파리바게트에서 산 케이크였다(2단 케이크가 나왔다면 진짜 놀라 뒤집어질 뻔).
폐회사를 끝으로 정년퇴임식이 마무리 되었고, 무대 앞에서 기념 촬영이 이어졌다. 가족팀, 지인팀, 행정실팀, 교직원팀으로 나눠서 교장선생님과 사진을 같이 찍었다. 나는 이제 교장선생님의 사진첩 한 귀퉁이 안에서 기억되다가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해서 시간으로만 50분, 교무부장님과 정보부장님을 갈아서 만든 정년퇴임식과 퇴임식 영상 시청이 마무리되었다.
퇴임식에 대한 소회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은 처음이었지만, 다른 선생님의 정년퇴임은 종종 봐왔다. 그러나 이렇게 성대한 정년퇴임식은 처음이었다. 교장이어서 이렇게 성대하게 한 건가 싶기도 하면서도 모든 교장이 이런식으로 정년퇴임식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교장이어도 조용히 학교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우리 학교 교장처럼 성대하게 마무리를 짓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개인의 성향 차이로 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로는 화려한 퇴임식보다는, 조용한 퇴임식이 더 대세가 되는 느낌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다. 퇴임하는 본인에게 퇴임은 특별한 일이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수 많은 사람들의 퇴임 중 한 명의 퇴임에 불과할 것이다.
정년퇴임식을 마치고 퇴근 이후 학교 인근 식당에서 친목회에서 주관하는 식자 자리가 있었다. 우연하게 퇴임식을 진두지휘하신 교무부장님과 같이 앉게 되었다. 교무부장님은 퇴임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단순한 고생이 아닌 개고생의 과정이었다고 하셨다. 이런 퇴임식을 본적도, 해본적도 없다고 하셨다. 교무부장님의 표정을 보니 이와 같이 성대한 퇴임식이 정녕 누구를 위한 퇴임식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식은 퇴임하는 나를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간 나와 함께 고생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할까? 나의 퇴임식은 어떤 모습일까? 20년 뒤에도 퇴임식이라는게 존재는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