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간에 변신 책 만들기를 했다. 변신 책이라고 표현하긴 했는데, 펴는 방식에 따라 페이지 4개가 나오는 신비한 책이다. 5학년 정도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도화지를 접고 자르고 다시 접어서 책을 만드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시간이 남을 것 같아서 추가 활동을 준비했다는 게 함정).
힘들게 책을 만들고 다음 한 시간은 만든 책에 주제에 맞는 그림 4개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계절을 대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 페이지씩 그리는 학생도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4가지를 하나씩 그리는 친구도 있었고, 그리지 말라고 했지만 기여코 4컷 만화를 그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똑같은 모습의 졸라맨만 4개 그려놓고 다른 친구와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술 시간에 항상 등장하는 대충대충 스타일의 학생이다.
이 학생들은 미술에 관심이 없다. 그리라고 해도 대충 그리고 다 했다고 가지고 온다. 시간을 줘도 10분이면 다 했다고 말을 한다. 가서 해 놓은 걸 보면 색칠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밑그림도 공을 들이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사람을 그리라면 오직 졸라맨밖에 그리지 못하고, 나무를 그리라고 하면 유치원생 난화기 수준의 나무를 그려 놓는다. 잘 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닌데, 그저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참 예쁠텐데 이 부류의 학생들은 미술 작품 완성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이 학생으로 인해 결국 난 화가 났고,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학생을 지도했다. 미술 시간에는 시각적 표현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네가 그린 졸라맨 그림은 미술 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제 의식도 없고 표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더 노력해서 자세히,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고 지도했다. 그럼에도 학생은 들은둥 마는둥 하면서 졸라맨의 팔과 다리에 손가락과 발가락을 그려놓고는 여전히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뭐라도 시켜야 할 것 같아서 따라 그리기 활동을 시켰다.
따라 그리기
어려운 그림보다는 쉬운 캐릭터(카카오 프렌즈, 라인 프렌즈)라도 따라 그리게 하고 검사하는 게 핵심이다. 반드시 검사를 해야 한다. 검사할 때 조금만 잘 그려와도 폭풍 칭찬을 해주는 게 포인트다.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밉고 얄미워도 현행 교육법과 사회 분위기에서는 우쭈쭈해주는 방식으로 지도할 수밖에 없다.
못한다고 혼내고 야단치는 훈육은 2024년 학교에서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학생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등 어린 시절부터 지내왔던 기관에서 이런 훈육 방식에 노출이 안되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사가 화내고 야단쳐도 그게 자신을 위해 지도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냥 '이 사람 왜 이래?', '왜 나한테 화내?' 정도의 생각만 가능할 뿐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동학대로 엮일 수도 있으니 내 밥그릇을 내놓을만한 위험한 지도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힘을 주는 건 아래 작품을 그린 학생처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만 데리고 수업하면 참 좋을 것 같지만, 이런 학생들만 모아놓아도 이중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또 생긴다. 진리의 20 : 80 법칙이다. 못 하는 학생보다는 잘 하는 학생에 초점을 두고, 그 학생들을 더 많이 칭찬하고 격려하면 좋은 학급이 된다고 한다. 칭찬이 인색한 내가 귀담아 들어야 할 좋은 방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