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미술 1단원에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단원이 있다(검정 교과서라 교과서마다 단원 순서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싫어하는 지, 성격이 어떤지 등에 대해 고민해보고 고민한 결과를 마인드맵과 자화상 등으로 표현하고 유명 화가들의 자화상을 감상하는 내용의 단원이다. 학년초에 하기 좋은 내용이어서 마음에 드는 단원 중 하나다.
오늘은 이 단원의 메인 활동인 자화상 그리기 활동을 하고 후기를 남겨본다.
수채화로 자화상 그리기 - 준비
미술 교과서에서 자화상 그리기의 방식을 지정해주지는 않는다. 참고 작품으로도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작품과 종이를 잘라서 붙인 작품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제시하며 다양한 표현을 격려하고 있다(미술 교과서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던건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정말 학교 미술 시간에 만들 수 있는 지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은데 부끄럽지만 학교에서 단 한 번도 해본적 없다. 아무리 싸졌다고 해도 개당 캔버스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편의상 수채화를 주로 사용하고 있고 이번에도 수채화를 통해 자화상을 그렸다.
참 신기한게 하나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 학생의 성격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망하더라도 과감하게 그리고 수정 따윈 하지 않는 학생은 덩치와 목소리가 크고 거친 남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종이는 큰데 그림은 정말 작게 그리는 학생은 MBTI로 봤을 때 E보다 I일 가능성이 높다. 미술 두 시간 중에 한 시간이 지나도 밑그림만 그렸다 지웠다 하는 학생은 신중하고 조심성 많은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미술 시간에 그리라는 그림은 안 그리고 돌아다니며 떠드는 학생은 시종일관 말썽쟁이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첫 활동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것 저것 떠올려보는 활동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듣고 싶은 칭찬, 가장 즐거울 때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발표해봤다.
다음은 온전히 나를 위해 눈을 감고 1분 동안 나 자신을 폭풍 칭찬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1분이 너무 길었다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는데, 자기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해주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7번에 쓴 나를 기쁘게 만드는 칭찬을 포스트잇에 옮겨적고 칠판에 붙였다. 이건 자화상을 그리고 난 다음 칭찬하는 종이를 따로 만들어서 자화상 밑에 붙일 계획이다.
수채화로 자화상 그리기 - 작품 만들기
학생들에게 8절 도화지를 나눠주고, 가져온 사진이나 스마트폰을 꺼내 밑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역시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터져나온다. 유치원 때 찍어 놓은 사진을 가져온 학생, 스마트폰에 사진은 있는데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는 학생, 스마트폰은 가져왔는데 부모가 사용을 잠궈놓은 학생, 사진 자체가 없는 학생들이 담임 교사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충전기도 빌려주고 내 태블릿도 빌려주고 학기초에 찍은 사진을 출력해서 나눠주며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다(빌려준 내 태블릿은 결국 물감 테러를 당했다).
역시나 자신들의 성격과 개성을 밑그림에 뽐내면서 1시간이 지날 때쯤 밑그림을 다 그린 학생은 절반 정도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고 활동을 격려했다.
밑그림까지는 그나마 봐줄만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수채화 채색에 들어가니 좋았던 그림들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흔히 있는 일이다. 사실 나도 잘 못한다(수채화 너무 어렵다). 그래도 채색의 기본기가 안되어 있는 학생들이 많아서 물 조절 실력을 길러주는 그라데이션 채색 연습을 해볼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20분이 남았을 무렵 4분의 1정도 학생이, 10분이 남았을 무렵 절반 정도의 학생이 작품을 완성했다. 완성한 사람들에게는 뒷정리의 의무가 주어졌다. 사실 수채화 활동의 가장 큰 적은 뒷정리다. 교실은 내 감독하에 있으니 물통 물만 쏟지 않으면 비교적 깔끔하게 관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붓과 파레트를 씻으러 가는데 세면대 주변으로 물감물이 다 튀어 엉망이 된다. 아무리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조심하라고 해도 효과가 없다. 화장실 망가지는 건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차이가 없다, 내가 화장실을 지키고 있어도 튀는 물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에게 계속 주의를 주는 것 뿐이다. 오늘 바빠서 이걸 깜빡했더니 화장실이 더 엉망이 되었다. 다음에는 꼭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수채화로 자화상 그리기 - 마무리
5분이 남았을 때 타이머를 가동하고 타임어택 모드를 발동시켰다.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낸다. 그래야 집에 일찍간다(6교시였다)고 학생들을 설득했다. 느렸던 붓질과 발걸음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결국 한 명을 뺀 모두가 작품을 완성했다. 다 못한 한 명은 집에서 숙제로 해오기로 했다. 집에서 수채화 숙제를 하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학생의 성실성과 부모의 관심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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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미술 수채화로 자화상 그리기 |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한 학생들 작품이다.
칭찬하는 종이 만들어 붙이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