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 책을 읽고 삶에서 의미와 운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자신만의 확고한 삶의 의미가 있다면 죽음 속 지옥 불구덩이도 웃으면서 들어갈 수 있다는 말과 칸트의 주장과 달리 도덕적인 행동은 개인의 순수 이성에 달린 게 아니라 개인이 처한 환경, 그 환경을 접하게 되는 순전한 '운'에 달렸다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불혹을 앞두고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 내 삶을 구성하게 된 과거의 운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내 자신이 처연하게도 느껴져 직장에서 갑자기 울음이 나올뻔도 했다. 가을도 아닌 초여름에 이게 무슨 심리 상태인가 싶다.
최근에 초등학교 6학년 때 가르쳐주신 선생님을 뵈었다. 연락도 자주 못 드리는 무심한 제자를 귀한 시간을 내어서 만나주셨다.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며 어느새 50대 초입에 접어드셨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 그 모습으로 계셨다. 선생님의 모습보다 인상적인 것은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25년 전 교실에서 들었던 20대 시절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재생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교실에서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체육 시간에 뭘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진작에 잊혀졌지만, 그 때 선생님께 느꼈던 분위기와 감정, 선생님이 우리를 봐주시던 따뜻한 눈빛은 잊히지 않는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선생님께서는 과거에도, 지금도 내게 많은 가르침과 울림을 주고 계신다. 10년 전 만남 땐 거절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이번 만남에서는 사람과 인연, 사람을 키우는 행위 자체의 의미와 소중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6학년 때 사회를 좋아했고 순둥순둥했던 한 제자가 아들을 낳아 키우는 멋진 아빠가 되었다며 대견해하셨다. 제자이기 전에 직장 동료로 인정해주시고 격려해주셨다. 선생님과 나는 점점 나빠져 가는 교육 상황을 개탄했고 많은 선생님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운이 좋아 아직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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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전경련회관 꼭대기 식당 전경 |
선생님께서는 서이초 사건 후 열린 모든 집회에 참가했다고 하셨다. 9월 2일 투쟁에서는 학교 내에서 선배 선생님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고 찾아가서 설득해서 선생님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셨다고 하셨다. 내가 6학년 때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던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께 우리를 맡으신 건 발령 2년 차 때였다. 선생님께선 그때를 돌아보며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대로 가르쳤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내 아이를 키웠던 대로 가르친다"고 말씀하셨다. 과거 우리를 가르쳤을 땐 완벽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가르치려고 노력한다고 말씀하셨다. 여유의 비결을 물으니 자녀가 가르치는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아지면 생긴다고 하셨다. 교사에게 자녀를 낳고 키운다는 의미는 다른 직업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어 보인다.
사실 교대에 다닐 때부터, 아니 입학을 준비할 때부터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마음에 두고 교직 생활을 그려왔다. '나도 저런 멋지고 열정적인,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교사가 되었다(선생님께서 부담 느끼실까봐 면전에서 말씀 드리진 않았다). 그러나 교사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학교 생활과 수업에 대한 열정은 증발하는 물컵 속에 남은 물처럼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거꾸로 수업, 하브루타, IB, 디지털 교육 등 많은 교육 이론들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 진짜 교육이고 가르치는 것인지 오히려 경력이 늘어나면서 답을 하기 어려워졌다. 아이들을 가르친 지 10년이 넘었지만 나만의 가르침이 무엇이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여전히, 아직도, 아마도 교육이 무엇인지 정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나만의 해답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가 교사로서 생활하는 삶의 의미가 될 것이다. 선생님을 뵙고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소중함, 사람을 기르는 일의 값짐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마음속으로 내려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내 마음만 바뀔 뿐이다.
수학 시간에 연습 문제를 다 풀고, 내가 선물?로 준 학습지까지 다 풀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문뜩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옷 입고, 대충 씻고, 가방 챙겨서 9시까지 늦지 않게 학교에 와서 1교시부터 수학 문제를 조용히 풀고 책까지 알아서 읽고 있다.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반 학생들을 '대단이들'이라고 불러주려고 한다. 앞으로도 내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을 '대단이들'이라고 불러줘야겠다. 나와 함께 보내는 1년이 '대단이들'이 더 대단해지는 데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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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이들!! |